퇴근 후 걷기가 기다려지게 된 방법 — 귀여운 산책 게임 2주 기록
만보기 앱을 깔았다가 사흘 만에 지운 적, 저만 있는 건 아니겠죠.
“오늘 4,212보. 목표까지 5,788보 남음.” 이 숫자를 볼 때마다 걷기는 점점 숙제가 됐어요. 운동 부족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딱히 칭찬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매일 조금씩 미안해지는 버튼이 됐습니다.

질문 하나를 바꿔봤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제 마음에 드는 앱을 하나 만나게 됐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제가 직접 만든 앱이라서 편애일 수 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만보기는 늘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몇 걸음 걸었나?”
이 앱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어떤 동물이 나올까?”
CanGoGo(캔고고)라는 iOS 앱인데요, 귀여운 산책 게임입니다. 3,000보를 걸을 때마다 동물 배지가 하나 열려요. 어떤 동물이 나올지는 걸어봐야 알 수 있고, 그 동물들이 전부 손으로 직접 그린 일러스트입니다.
숫자를 채우는 걷기가 아니라, 동물을 모으는 걷기. 이 차이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2주 동안의 기록
첫째 주 월요일, 첫 동물로 여우가 나왔습니다. 퇴근길에 골목을 돌아가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지하철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었습니다.
수요일에는 고양이가 나왔습니다. 비 오는 날이었는데, 우산을 접고 편의점에 들어가는 걸로 2,000보를 채웠습니다.
둘째 주가 되니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앱을 확인하려고 걷는 게 아니라, 걸으면서 오늘은 뭐가 나올까 궁금해지고 있었습니다. 만보기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던 변화예요.
주말에는 도감을 펴놓고 남은 칸을 세웠습니다. 잠긴 칸이 아직 열둘.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다 보면 저녁 산책이 끝나 있었습니다.

왜 이 앱이 마음에 들었나
솔직히 귀여운 앱은 많아요. 그런데 이 앱이 유독 마음에 드는 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진짜 손그림이라는 것. 동물마다 온기가 달라요. AI가 뽑아낸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개발자가 직접 그렸다고 하니, 컬렉션에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그 마음이 느껴집니다.
둘째, 내 걸음이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 GPS를 쓰지 않고, 계정도 필요 없고, 걸음 데이터가 폰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만보기 앱에 제일 중요한 게 이게 아닐까요.
셋째,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 것. 못 걸은 날 동물이 사라지지도 않고, 미룬다고 경고 알림이 오지도 않습니다. 그냥 다음 동물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요.
걷기 습관은 채찍이 아니라 기대로
2주를 해보고 느낀 건, 걷기 습관이 안 생기는 이유는 의지 부족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매일 같은 숫자를 향해 채찍질당하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각오를 다져도 사흘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내일 뭐가 나올지 궁금한 구조에서는 각오가 없어도 자꾸 걷게 돼요.
동물 수집 앱이나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바로 이해하실 그 느낌입니다.
이런 분께 추천해요
- 귀여운 것을 보면 마음이 녹는 분
- 동물 모으고, 도감 채우는 걸 좋아하는 분
- 부담스럽지 않은 귀여운 만보기를 찾고 계신 분
- 하루 30분이라도 걷고 싶은데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 분
마무리하며
제가 만든 앱이라 광고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개발자의 사심을 걷고 2주 동안 꽤 즐겁게 걸었다는 건 사실이라 남깁니다. 혹시 써보시고 어떤 동물이 나왔는지, 어떤 동물이 나오면 좋겠는지 알려주시면 다음 글에서 반영해서 들려볼게요. 여러분의 퇴근길에도 기다려지는 무언가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